레고의 추억

한강변에서 달리는 사람들 보고, 저 사람들 지금 무슨 생각하며 달릴까 궁금하신 적 없습니까. 아침 조깅을 하고 샤워한 후 글을 쓰는 샐러리맨형 작가 하루키가 여기에 대해 답한 적이 있죠. 오만 가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을 길에 다 흘려 보낸다. 정말 그렇습니다. 벼라별 것을 다 생각합니다. 중학교 도시락 반찬 비엔나 소시지에 뿌려진 케찹을 생각하기도 하고, 스무살 연애할 때 여자친구 얼굴이 굳어졌던 이유를 깨닫기도 합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스폰지밥처럼 마음 속으로 외치며 달려가는 거지요. 쪽 팔릴 수록 속도가 올라 갑니다.


오늘 새벽에는 저를 추월해 앞서 달리며 역주하는 아주머니의 소녀 시절을 제멋대로 지어내다, 아주머니가 시야에서 벗어나 사라진 이후, 레고를 생각했습니다. 


80년 초반, 외가에 놀러가면 부러운게 많았지요. 어머니가 몰락한 부잣집 딸인지라, 망해도 삼년갔던 흔적이 미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덴마크 유학을 했던 큰외삼촌이 조카들에게 아낌없이 레고를 사 보낸 거지요. 사촌들의 장난감은 그 어떤 것과도 달랐습니다. 하얀색은 하얗고, 빨간색은 빨갛고. 여지껏 제가 만져볼 수 있었던 다른 장난감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하얀색은 누렇고, 빨간색은 팥죽색이었지요. 정교한 부품들로 만들어진 소방차는 너무나 아름다운 빨강이었습니다. 



저는 도도한 꼬마였나 봅니다. 사촌들의 장난감을 부러워하는 티를 내지 않았고,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참았던 욕구는 내면화되어, 지금도 페라리의 빨강보다 레고의 빨간 소방차가 욕망의 대상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네모난 제품을 끝없이 욕망했던 이유도, 옆집 친구의 루빅스 큐브를 몰래 부러워 했던 유년의 욕구불만에 있…을 지 모릅니다. 


그리고, 수 년이 지나 레고가 한국에도 나왔습니다. 그게 레고였는지 그 때 알게 되었지요. 국민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80년대 초반의 호황을 운좋게 탄 아버지가 멀티64라는 애플][ 호환 기종을 냅다 집에 가져온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까지 뭘 사달라 졸라 댄 기억이 없습니다. 레고 사자성을 갖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생일 선물로 받게된 6080 사자성. 바닥이 세 조각이라 성이 활짝 열리는 기믹이 있었지요. 피겨도 12개. 말도 네 마리. 기억을 더듬어 가지고 있었던 제품들을 찾아보니, 84년, 85년 제품이 대다수네요. 이 글을 적으며 brickset.com에서 검색을 해봤는데, 그 때가 레고도 도약기였나 봅니다. 내놓는 제품 수가 달라졌지요. 처음 샀던 사자성의 미니피겨는 유달리 헐거웠습니다. QC가 제대로 안되었나 봅니다. 딱 2년 레고를 사니 저만의 레고 세계가 갖춰지더군요.


그날 만든 건 그날 박살냅니다. 우주기지와 경찰서와 기사들이 뒤섞인 카오스의 공간에서 떠오르는 영감을 타고 새로운 세계를 지어내고, 그 순간이 지나면 모래처럼 흩어버리는 거지요. 때때로 원래 킷대로 재조립하기도 했는데, 설명서 없이도 가능했었습니다. 87년에 놀라운 정리 주머니가 나왔어요. 가져 놀다 끈만 당기면 순식간에 정리되는. 



레고를 언제까지 가지고 놀았을까요. 어머니가 기겁할 때 까지 가지고 놀았습니다. 제 레고 생활은, 입시 때문에 서울에 간 그 짧은 순간 어머니가 옆집에 싹 줘버린 이후 끝이 납니다. 토이스토리3 처럼 이별하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어머니를 이해시키진 못했지만, 레고 놀이는 고3도 충분히 할 만한 겁니다. 여러 가지 패턴이 있었지요. 초등학교 때는 주로 상황극 놀이였습니다. 크레인이 달린 방송차 (6659 TV Camera Crew)가 제게 영감을 줬거든요.

 레고 주머니를 내려 놓으면 상황극이 떠오릅니다. 사극을 찍으려는 감독과 세트 담당자의 갈등. 좋아. 성 안의 한 방에서 작전 계획을 짜며 영화가 시작합니다. 카메라는 해자가 내려지는 모습을 찍으러 이동하는데, 방송차가 이동할 동선이 안맞으면 NG컷이 나오는 거죠. 편집기가 없는 60년대 방송국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세트 담당자 입장에서 부랴부랴 세트를 구성하면, 감독 입장에서 품평을 합니다. 큐브릭 못지 않은 아주 악질 감독이었지요. 수 없이 세트가 지어졌다 망가졌다. 수 시간이 지나 최적의 세트장이 마련되고, 노컷으로 촬영이 진행되면, 짜잔. 주머니를 접어 그날의 세계를 망가뜨리는 겁니다. 그건 하나의 예술이었어요. 토요명화에서 곧잘하던 멜 브룩스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었나 봐요.


중학교 때는 사자성 바닥으로 슬로프를 만들어서,  어떤 차가 가장 멀리 가는 지 몰입한 적이 있습니다. 바퀴가 큰 것 작은 것. 고무 바퀴와, 플라스틱 바퀴. 무게 중심이 앞에 있는 것, 뒤에 있는 것. 휠베이스가 긴 것과 짧은 것. 이 놀이는 수명이 길었습니다. 가장 멀리 가는 챔피언을 만들어 둔 후 기록을 깨려 수 없이 개조하는데 시간을 보냈거든요. 


고등학생이 되니 레고 디자이너보다 더 적은 부품으로 최적화된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레고 디자이너와의 경쟁이죠. 새로운 부품에 대한 욕구는 전혀 없었어요. 새로 나온 건 애들 장난감이고, 집에 있는 건 나만의 세계였으니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래 제품들이 있었나 봅니다.


6080 사자성 / 6366 소방차 / 6622 우체부 / 6881 Lunar Rocket Launcher / 6971 Inter-Galatic Command Base / 6931 FX-Star patroller / 6891 Gamma-V Laser Craft / 6697 Rescue-I Helicopter / 6677-1 Motocross Racing / 789 Storage Cloth / 6687 Turbo Prop I 1987 


거진 84, 85년의 제품들이네요.


20대 어느 날, 여자친구 집에 놀러가니 여자친구 조카가 레고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찾아보니 6289 지중해의 보물선이네요. 



이건 뭔가. 레고가 망했구나. 기본 블록이 별로 없고,  대다수 부품이 특수형이라 응용의 여지가 없었어요. 조카 녀석도 어렸을 때의 저보다 두 배는 똑똑한 놈인데, 레고를 가지고 노는 방식이 너무 유치한 것 아닙니까.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매뉴얼대로 놀고 있어요. 조사해 보니 레고는 게임기 3종이 업치락 뒤치락하는 사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겁니다. 그즈음 IMF가 터져 저희 집도 레고사의 창의성처럼 몰락해 버렸습니다. 친구가 마인드스톰을 같이 하자 꼬드기는게 얄미웠던 기억이 나네요. 


레고는 제 삶에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구일역 토이저러스에 가보니, 레고 영화 스튜디오킷을 전시해 놨더군요. 어릴 때 기억들이 되살아 났습니다. 레고 디자이너도 나처럼 영화놀이 했던 사람이 많았구나. 동지애를 느끼며 흐뭇하게 한참을 바라봤지요. 


최근 레고의 제품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손댈 수 없는 저 높은 곳에 위치한 컬렉션이 되어 있지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캠퍼밴과 밀레니엄 팰콘, 레고 백화점,  블랙펄호를 산산조각내서 한데 뒤섞어 보고 싶다. 두근두근. 그만큼 짜릿한 놀이감이 또 어디 있을까. 레고사의 디자이너를 비웃으며 더 멋진 캠핑카와 더 많은 기믹의 밀레니엄 팰콘을 만들며 놀텐데. 


레고와 애플 컴퓨터가 제 손에 들어왔던, 꿈의 해 1984년을 추억하며 글을 마칩니다.

'잡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오는 날의 전우애  (0) 2012.06.30
어느 팥빙수 애호가의 탄식  (0) 2012.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