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에 해당되는 글 5

  1. 2012.06.30 비 오는 날의 전우애
  2. 2012.06.30 레고의 추억
  3. 2012.06.30 어느 팥빙수 애호가의 탄식
  4. 2012.06.14 2일차. 2코스-3코스.
  5. 2012.06.12 1일차. 공항-1코스-2코스 초입.

비 오는 날의 전우애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제 개장한 망원 야외 수영장. 29일 개장을 했지요. 뛰러 나가는 길목에 있어 준비 과정을 보게 됩니다. 27일 부터 조금씩 물을 채우기 시작해 드디어 개장을 했구나. 물속에 들어간 이는 없고 어린 아가씨들은 선탠만 하고 있었습니다. 드레스 코드가 명확한 지 모두가 비키니만 입었었죠. 이 짧은 여름을 위해 그렇게 준비했구나. 복근을 만들기 위한 그간의 싯업. 치즈 크러스트 피자 대신 크런치. 맥주 맛있는 것 모를 이 누가 있겠냐만, 맥주도 치킨도 참고 견뎌 냈구나. 최신 비키니의 트랜드는 이러했구나. SS시즌 칼라 코드는 이런 거구나. 날씨는 참 컸습니다. 아니 맑았습니다.


조그만 감동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흰 밀가루와 흰 설탕 세로토닌의 유혹에 맞서 당당히 맞서고 있다. 이건 현대전의 또 다른 모습이다. 전우애를 느끼며 내일을 불사르리. 


오늘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아뿔싸. 열흘 연속 출석부에 도장을 찍었 건만 오늘은 결석인가. 어제 했던 결심들이 스쳐 지났습니다. 누군가는 퍽퍽한 닭가슴살을 먹고 지금도 변비로 고생하고 있을텐데. 그래도 빗소리는 너무나 거창합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책을 읽어도 어제의 여전우들이 스쳐 지나더군요. 


내년에는 웃통벗고 뛰자. 런닝셔츠 입은 듯한 우스꽝스런 싱글렛 자국 대신에 까만 상체를 만들어야지.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한강에서 저렇게 뛰면 한강 홀딱남으로 인터넷에 올라올 겁니다.

 

빗속에 뛰러 나갔습니다. 그놈의 전우애 때문에. 아이폰은 랩으로 둘둘 말고. 제일 만만한 이어폰을 꺼내 끼고는 뛰기 시작했습니다. 


망원지구 수영장을 조금 넘으면 한강 물놀이장이 나오지요. 높이를 한강과 맞추어 마치 한강에서 수영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노렸다는 이제는 잊혀진 이름 오세훈의 빛나는 열정의 결과물. 오픈 다음 날에 물이 차오르고, 상류는 방류를 할 터이니 존재감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울 그 물놀이장. 모두가 노할 때 예스하며 그 물놀이장을 만들었겠지요. 그곳을 스쳐 지나면 3킬로 지점입니다. 이 넓은 곳에 아무도 없으니 사치스런 기분이 듭니다. 차가웠던 몸도 달구어졌고, 빗속에 가쁜 호흡도 안정되었습니다.


찰박찰박 첨벙첨벙. 재미없었던 어느 소설을 생각하며, 나라면 이렇게 풀어 나갔을텐데 문학비평을 시작합니다. 달리기를 할 때는 새털같이 가벼운 온갖 세상 잡사를 꼬치꼬치 따지게 됩니다. 최근에는 소설가 황정은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뛰고 있지요. 이 아가씨 슬쩍 잠오는 톤으로 자신의 소설처럼 나긋나긋 말하는데, 듣고 있으면 하는 일 없는 동아리방에서 맥주 한 잔 하는 기분을 들게 만듭니다.


반환점을 돌아 나오니 러너들이 눈에 뜨입니다. 찰나의 순간에 스쳐지나지만 공감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비키니 아가씨들의 노고에 비한다면 이 짧은 폭우가 무어 장애란 말이냐. 우리 허들을 뛰어 넘읍시다. 스쳐 가는 눈빛 속에서 그런 각오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한시간 쫄딱 비맞고 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갈림길에서 조금 미친 쪽의 길을 선택했구나. 탄탄하고 든든한 방안에서 뛰쳐 나와 야생의 모험을 했구나. 다행히 조난 당하는 일 없이, 한강에 혹 있을지 모를 민물 상어와 아쿠아맨의 공격을 피해 무사히 이 길을 뛰고 있구나. 스스로 칭찬하며 뛰었습니다.


한강에선 열명 남짓의 러너를 만났습니다. 세상에는 약간 미친 인간들이 많다. 꾸역꾸역 흙탕물에 젖은 운동화를 씻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스며든 흙탕물은 안지워 지지만, 한강에서 선탠을 하기 위한 그 노력에 비한다면 우스운 얘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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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의 추억

한강변에서 달리는 사람들 보고, 저 사람들 지금 무슨 생각하며 달릴까 궁금하신 적 없습니까. 아침 조깅을 하고 샤워한 후 글을 쓰는 샐러리맨형 작가 하루키가 여기에 대해 답한 적이 있죠. 오만 가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을 길에 다 흘려 보낸다. 정말 그렇습니다. 벼라별 것을 다 생각합니다. 중학교 도시락 반찬 비엔나 소시지에 뿌려진 케찹을 생각하기도 하고, 스무살 연애할 때 여자친구 얼굴이 굳어졌던 이유를 깨닫기도 합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스폰지밥처럼 마음 속으로 외치며 달려가는 거지요. 쪽 팔릴 수록 속도가 올라 갑니다.


오늘 새벽에는 저를 추월해 앞서 달리며 역주하는 아주머니의 소녀 시절을 제멋대로 지어내다, 아주머니가 시야에서 벗어나 사라진 이후, 레고를 생각했습니다. 


80년 초반, 외가에 놀러가면 부러운게 많았지요. 어머니가 몰락한 부잣집 딸인지라, 망해도 삼년갔던 흔적이 미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덴마크 유학을 했던 큰외삼촌이 조카들에게 아낌없이 레고를 사 보낸 거지요. 사촌들의 장난감은 그 어떤 것과도 달랐습니다. 하얀색은 하얗고, 빨간색은 빨갛고. 여지껏 제가 만져볼 수 있었던 다른 장난감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하얀색은 누렇고, 빨간색은 팥죽색이었지요. 정교한 부품들로 만들어진 소방차는 너무나 아름다운 빨강이었습니다. 



저는 도도한 꼬마였나 봅니다. 사촌들의 장난감을 부러워하는 티를 내지 않았고,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참았던 욕구는 내면화되어, 지금도 페라리의 빨강보다 레고의 빨간 소방차가 욕망의 대상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네모난 제품을 끝없이 욕망했던 이유도, 옆집 친구의 루빅스 큐브를 몰래 부러워 했던 유년의 욕구불만에 있…을 지 모릅니다. 


그리고, 수 년이 지나 레고가 한국에도 나왔습니다. 그게 레고였는지 그 때 알게 되었지요. 국민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80년대 초반의 호황을 운좋게 탄 아버지가 멀티64라는 애플][ 호환 기종을 냅다 집에 가져온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까지 뭘 사달라 졸라 댄 기억이 없습니다. 레고 사자성을 갖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생일 선물로 받게된 6080 사자성. 바닥이 세 조각이라 성이 활짝 열리는 기믹이 있었지요. 피겨도 12개. 말도 네 마리. 기억을 더듬어 가지고 있었던 제품들을 찾아보니, 84년, 85년 제품이 대다수네요. 이 글을 적으며 brickset.com에서 검색을 해봤는데, 그 때가 레고도 도약기였나 봅니다. 내놓는 제품 수가 달라졌지요. 처음 샀던 사자성의 미니피겨는 유달리 헐거웠습니다. QC가 제대로 안되었나 봅니다. 딱 2년 레고를 사니 저만의 레고 세계가 갖춰지더군요.


그날 만든 건 그날 박살냅니다. 우주기지와 경찰서와 기사들이 뒤섞인 카오스의 공간에서 떠오르는 영감을 타고 새로운 세계를 지어내고, 그 순간이 지나면 모래처럼 흩어버리는 거지요. 때때로 원래 킷대로 재조립하기도 했는데, 설명서 없이도 가능했었습니다. 87년에 놀라운 정리 주머니가 나왔어요. 가져 놀다 끈만 당기면 순식간에 정리되는. 



레고를 언제까지 가지고 놀았을까요. 어머니가 기겁할 때 까지 가지고 놀았습니다. 제 레고 생활은, 입시 때문에 서울에 간 그 짧은 순간 어머니가 옆집에 싹 줘버린 이후 끝이 납니다. 토이스토리3 처럼 이별하는 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어머니를 이해시키진 못했지만, 레고 놀이는 고3도 충분히 할 만한 겁니다. 여러 가지 패턴이 있었지요. 초등학교 때는 주로 상황극 놀이였습니다. 크레인이 달린 방송차 (6659 TV Camera Crew)가 제게 영감을 줬거든요.

 레고 주머니를 내려 놓으면 상황극이 떠오릅니다. 사극을 찍으려는 감독과 세트 담당자의 갈등. 좋아. 성 안의 한 방에서 작전 계획을 짜며 영화가 시작합니다. 카메라는 해자가 내려지는 모습을 찍으러 이동하는데, 방송차가 이동할 동선이 안맞으면 NG컷이 나오는 거죠. 편집기가 없는 60년대 방송국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세트 담당자 입장에서 부랴부랴 세트를 구성하면, 감독 입장에서 품평을 합니다. 큐브릭 못지 않은 아주 악질 감독이었지요. 수 없이 세트가 지어졌다 망가졌다. 수 시간이 지나 최적의 세트장이 마련되고, 노컷으로 촬영이 진행되면, 짜잔. 주머니를 접어 그날의 세계를 망가뜨리는 겁니다. 그건 하나의 예술이었어요. 토요명화에서 곧잘하던 멜 브룩스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었나 봐요.


중학교 때는 사자성 바닥으로 슬로프를 만들어서,  어떤 차가 가장 멀리 가는 지 몰입한 적이 있습니다. 바퀴가 큰 것 작은 것. 고무 바퀴와, 플라스틱 바퀴. 무게 중심이 앞에 있는 것, 뒤에 있는 것. 휠베이스가 긴 것과 짧은 것. 이 놀이는 수명이 길었습니다. 가장 멀리 가는 챔피언을 만들어 둔 후 기록을 깨려 수 없이 개조하는데 시간을 보냈거든요. 


고등학생이 되니 레고 디자이너보다 더 적은 부품으로 최적화된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레고 디자이너와의 경쟁이죠. 새로운 부품에 대한 욕구는 전혀 없었어요. 새로 나온 건 애들 장난감이고, 집에 있는 건 나만의 세계였으니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래 제품들이 있었나 봅니다.


6080 사자성 / 6366 소방차 / 6622 우체부 / 6881 Lunar Rocket Launcher / 6971 Inter-Galatic Command Base / 6931 FX-Star patroller / 6891 Gamma-V Laser Craft / 6697 Rescue-I Helicopter / 6677-1 Motocross Racing / 789 Storage Cloth / 6687 Turbo Prop I 1987 


거진 84, 85년의 제품들이네요.


20대 어느 날, 여자친구 집에 놀러가니 여자친구 조카가 레고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찾아보니 6289 지중해의 보물선이네요. 



이건 뭔가. 레고가 망했구나. 기본 블록이 별로 없고,  대다수 부품이 특수형이라 응용의 여지가 없었어요. 조카 녀석도 어렸을 때의 저보다 두 배는 똑똑한 놈인데, 레고를 가지고 노는 방식이 너무 유치한 것 아닙니까.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매뉴얼대로 놀고 있어요. 조사해 보니 레고는 게임기 3종이 업치락 뒤치락하는 사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겁니다. 그즈음 IMF가 터져 저희 집도 레고사의 창의성처럼 몰락해 버렸습니다. 친구가 마인드스톰을 같이 하자 꼬드기는게 얄미웠던 기억이 나네요. 


레고는 제 삶에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구일역 토이저러스에 가보니, 레고 영화 스튜디오킷을 전시해 놨더군요. 어릴 때 기억들이 되살아 났습니다. 레고 디자이너도 나처럼 영화놀이 했던 사람이 많았구나. 동지애를 느끼며 흐뭇하게 한참을 바라봤지요. 


최근 레고의 제품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손댈 수 없는 저 높은 곳에 위치한 컬렉션이 되어 있지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캠퍼밴과 밀레니엄 팰콘, 레고 백화점,  블랙펄호를 산산조각내서 한데 뒤섞어 보고 싶다. 두근두근. 그만큼 짜릿한 놀이감이 또 어디 있을까. 레고사의 디자이너를 비웃으며 더 멋진 캠핑카와 더 많은 기믹의 밀레니엄 팰콘을 만들며 놀텐데. 


레고와 애플 컴퓨터가 제 손에 들어왔던, 꿈의 해 1984년을 추억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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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팥빙수 애호가의 탄식

팥빙수의 계절이 돌아 왔습니다. 저는 팥빙수 애호가입니다. 맛있다는 빙수집은 거진 방문했었지요. 년은 즐거운 시기였죠. 고만고만한 과일 팥빙수가 지배하던 암흑기를 뚫고, 다양하고 질좋은 팥빙수가 넘쳐나기 시작한 겁니다. 급기야는 팥과 연유만 들어간 복고풍 팥빙수가 은근은근 되살아났죠


역시 팥빙수는 심플한 . 부모님이 점심대신으로 드시던 레트로한 맛이 떠오릅니다. 커다란 얼음조각을 수동 빙삭기로 샥샥 갈아 수북하게 쌓아놓은 얼음 알갱이의 담백한 . 여름의 소울푸드지요. 만팔천원이 넘는 맛차 빙수를 먹어도, 모두에게 인정받는 밀탑 빙수를 먹어도 아쉬웠었죠. 마트에서 빙수 킷을 사서 가끔 해먹어도 맛과는 비교가 안되더군요. 이리 아쉬울까.


윤광준의 생활명품을 읽어 보면, 마가린 간장밥을 재현하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마가린 간장 밥도 만만치 않은 메뉴지요. 시골의사 박경철씨도 대학 다니러 도시로 와서 하숙집에서 ‘I can’t believe its not butter’라는 기묘한 덩어리를 쌀밥에 올려 간장을 뿌려먹던 맛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죠. 세상에 이런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니.


그런데 나이 들어 재현하려 했지만 맛이 안나오더란 겁니다. 수입 유기농 비싼 버터를 써도 따라갈 없는 . 알고보니 어린 시절 시장 간장집에서 병에 따라주던 몽고간장의 맛을 따라오는 간장이 없었던 겁니다. 수많은 시도 끝에 일본 기꼬망의 어떤 프리미엄 브랜드가 맛을 재현해주었고, 윤광준씨의 모험도 끝을 맺게 됩니다


소울 푸드, 없이 살던 시절이라 맛있게 느낄 뿐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동의하지 않습니다. 요즘 프리미엄 식품이래봐야, 공장에서 값싼 식재료를 MSG 색소로 가공하여 내놓지 않습니까. 좋은 쌀에 버터/마가린을 살짝 녹여 내고 질좋은 양조 간장을 올려낸 음식은 생각보다 고급 음식이었던 겁니다. 어린 시절 먹던 팥빙수도 생각보다 고급 음식 축에 들어갔던 거지요. 홍대 까페에서 공장제 팥을 올려 만원 가까이 파는 음식을 먹고 있노라면 확신이 듭니다


밋밋한 팥빙수에 아쉬움이 들던 어느 , 팥을 사와 끓이게 되었습니다. 팥을 삶는 일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아십니까. 기본적으로 한시간은 끓여 줘야 하죠. 동지날이면 팥죽을 끓이던, 몸이라도 아프면 단팥죽을 끓여내던 어머니가 새삼 고맙게 느껴집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압력솥에 삶아 버린다던데, 이게 위기탈출 넘버원에도 나온 위험한 방법이라고 하죠. 썬글라스 벗는 것도 위험하다는 방송이지만, 압력솥에 삶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두꺼운 껍질이 공기 배출구를 막을 있다는 거죠. 압력솥이라는 문명의 이기는 포기해야 합니다. 게다가 대류가 일어나지 않으니 드문드문 저어 줘야 해요. 더위에! 밀탑에는 장인이라 불러야할 팥삶는 할머니가 아침일찍 그날치 팥을 삶아 낸다고 하죠. 삶는 기술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에누리없이 한시간 삶고 나면, 설탕과 물엿, 혹은 꿀을 넣어 조려주는 시간이 옵니다. 저는 탄식을 내뱉을 밖에 없었지요. 식혜를 먹는 집이 줄어들고 있죠. 그런지 아시나요. 설탕을 쳐바르는 수준으로 부어줘야 맛이 난다는 겁니다. 팥잼이라할 수준으로요. 이걸 몰랐네요. 얼음에 넣어 먹으니 칼로리가 있겠나, 주마등처럼 스치는 칼로리 흡입의 순간들. 팥넣고, 연유넣고, 거기에 과일과 시리얼까지 넣어 먹으면 그건 내장파괴수준. 그것도 후식으로 먹었으니 호연지기지요.


팥이 익고, 다시 식을 까지 기다리면, 제작시간이 두시간이죠. 설탕을 쳐발라도 팥은 금방 상하니 많이 삶아 놓을 수가 없어요. 통조림 팥은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일주일이 지나야 맛이 간다지만, 이렇게 삶은 팥은 이틀이면 맛이 변해요.


설탕은 차마 레시피만큼은 넣을 없어서 반을 넣습니다. 복고풍은 포기해야지요. 더위에 미칠듯 한강변을 30 뛰는 것과 마찬가지랍디다. 그리하여 마침내 만들어진 심플한 팥빙수. 연유는 차마 넣을 수가 없어서 우유만 넣어 심플한 팥빙수.


맛이 조금 심심한 싶었죠. 에효. 일을 벌렸나. 첫번째 말아먹은 팥빙수는 그저 심심한 뿐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열대야에 시달리다 저녁도 팥빙수로 하기로 했습니다. 감동의 맛이 찾아 옵니다. 단순한 얼음과 심심한 팥과, 우유. 붉은 것과 투명한 것과 하얀 , 가지가 만나 이리 조화로운 맛을 내다니. 팥에게는 적당한 숙성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결국 주말 동안 모든 끼니를 팥빙수로 때웠습니다. 저는 팥빙수 애호가니까요. 그런데 팥빙수 애호가는 이제 안하기로 했습니다. 해먹기엔 번거롭고, 파는 칼로리의 실체를 알았으니까요. 심지어 편의점에서 파는 롯데 팥빙수. 그게 라면 칼로리와 맞먹더라구요. 월드콘보다 팥빙수가 칼로리가 높다니까요. 거기에 우유를 부어 먹으면, 라면에 밥말아먹는 수준이 되는 거죠


아듀. 팥빙수. 다이어트 끝난 다음에 보자꾸나.


인사동 오설록의 녹차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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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2코스-3코스.



아침이 되자, 지난 저녁 사이 좋게 술을 마시던 세 명은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갑니다. 올레 시작점으로 게스트하우스 차를 타고 가는 아저씨. 자전거를 끌고 가는 동생. 게스트하우스 시스템이 올레와 궁합이 맞습니다. 중간 지점에서 퍼지면 픽업을 나오며, 그날 저녁 쉬게 한 후 다음 날 어제 퍼진 바로 그 자리로 데려다 줍니다. 디아블로 퀘스트를 진행하며 웨이포인트를 찍고 마을에 돌아와 수사에게 축복받는 것과 흡사합니다. 한편, 자전거 여행을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지요. 임대한 자전거가 고장나면, 마패 찬 것 처럼 멀쩡한 자전거로 바꿔 주면서, 여행에 집중할 수 있게 시스템이 되어 있습니다. 라고 들었습니다. 걸어서 갈 거니까. 아무려면 어때. 바람에 흘려 듣지요. 

다시금 올레길에 들어서자 일출봉이 보입니다. 1,2코스는 일출봉을 끼고 돌고 돕니다. 일출봉은 해무 속에서, 나무들 속에서 보였다 사라졌다 반복합니다.

좌측으로 보이는 아담한 식산봉. 왜구가 쳐들어 오면, 이 언덕에 횃불을 놓아 우리 군량미 이 만큼 있다 요놈들아, 심리전을 폈다는 전설이 있네요. 


이어, 오조 마을에 들어 섭니다. 서명숙씨 강연에 의하면, 해녀 할머니가 민박집으로 부업할 수 있도록 연계를 해놨다고 하지요. 쑥스럽게 해녀 할망 민박이라 붙인 자그만 간판을 볼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읍내, 조그만한 슈퍼에서 아이스바를 하나 삽니다. 역시나 친절효요. 퉁명스럽지 않습니다. 메로나 하나 사며 미소 띈 눈을 마주쳤지요. 서울 잡화점에서 느끼던, 삶에 찌든 무기력한 모습들이 스칩니다.


올레 방향 표시 화살표는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순방향은 파란색 화살표. 역방향은 귤색 화살표로 되어 있지요. 갈림길에는 조형물로 만들어 붙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터 하나 둘 훼손된 것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발 밑으로 경작지를 둔 농가가 많습니다. 돌벽을 쌓고 그 아래에 농작물을 키웁니다. 축사일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농사 짓는 곳들도 저런 형태가 많지요. 돌담도 전문 석공이 와서 쌓는다고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하더군요. 또 하나의 물음을 심고 걸어갑니다.

둘째날 부터는, 제주도의 무덤을 숱하게 지나치게 됩니다. 다양한 생각을 하며 걷게 되지요. 육지와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합니다. 무덤 주위를 둘러싼 트랙터 바퀴 자국을 봅시다. 밭 가운데 무덤이 있기에 트랙터가 뱅뱅 돌아가며 두 세 배 힘들게 농사짓는 것이 보입니다. 제주도 사람은 무덤을 잘 건드리지 않는다고 해요. 남의 무덤이라 해도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척박한 땅. 흙값도 비싼데, 그 밭에 부모님을 모셔 두고 일을 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육지와는 다르게 그어졌지요.

한 눈에 봐도 명당 자리에 큰 무덤이 있습니다. 제주도도 힘 있는 사람은 다르구나 하다, 안내판을 보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무덤 주인 군위 오씨 석현공은 나주영장으로 있다가, 세조 쿠데타에 반발해 제주도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섬에 들어온 시조가 되는 셈이지요.


마침 이 무렵 제가 제주도에 들고간 책은 “한국 문화재 수난사”였지요. 거기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납니다. 일본인이 조선을 강점하면서, 골드러시가 시작됩니다. 조선에서 금이 나는 것도 아닌데 왜 골드러시일까요.

일본인과 달리 조선인은 선조의 무덤에 절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고려 무덤을 파헤치면 금값보다 비싼 청자가 수두룩하게 나오는 겁니다.

인디아나 존스처럼 동경대 고고학자가 고분을 휩쓸고 다녔던 거죠. 

고고학자와 도굴꾼과 고물상의 잘못된 만남. 훈민정음 혜례본도 잘못된 만남 속에 행방불명 중이라지요. 


어느날 이토가 상심에 빠진 고종에게 청자 컬렉션을 구경시켜 줬다고 한다. 고종 왈 "이게 어느 나라 도자기요?"

조선 오백년 동안 고려 전통은 끊겨, 고종은 청자를 이 때 처음 봤답니다. 당신네 무덤에서 꺼냈다고 할 수 없으니 이토는 묵묵 부답.

고려 무덤이란 무덤은 다 털어먹고 난 1930년 대. 고려 명문가가 제주도에 피신했다는 사실을 안 도굴꾼들은 석현공의 무덤을 타깃으로 삼습니다. 

고려 유신 집안이니 청자가 묻혀 있을 터. 마을 장정들이 불철주야 무덤을 지키고 있자니, 열불이 터진다.

에라이 절대 털어가지 못하도록 봉분을 높이자. 그래서 다 쓰러져가던 무덤이 저리 큰 크기가 되었답니다.

물론 안내판과는 조금 다른 이야깁니다. 믿거나 말거나. 한국 문화재 수난사, 흥미롭지만 열불 나는 이야기들이 가득 실린 책입니다. 추천합니다. 읽어보시라.

석현공묘가 있는 수산봉을 올라 갑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오름은 올라가도록 집요하게 길을 만든 서명숙씨. 여행 후반으로 가면 독한 아줌마 소리가 배어 나오게 되요.

흙길을 사박사박 올라가면 가운데가 움푹 패인 동그란 오름 모습이 보이지요.

다시금, 멀리 어렴풋이 일출봉이 가물거립니다. 오름을 올라갈 때 마다 거기에 일출봉이 있네요. 

수산봉 오름 길. 방목 가축이 빠져 나가지 못하게 ㅌ자 형태로 출입문을 만듭니다. 여기 저기 왠만한 오름은 사유지라는 것이지요. 사유지 주인들이 빗장을 열어 길들을 풀어 준 것인지라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걷습니다. 

시멘트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용머리가 귀퉁이에 장식이 되어있네요.

수산봉을 지나면 공동묘지가 나옵니다. 정리된 공원묘지와는 달리 고사리가 웃자란 무덤들 입니다. 제주 사람은 벌초를 하지 않는 것일까. 이 물음은 금새 풀어집니다. 벌초를 안 한 묘는 저 뒤의 갈대가 웃자란 노오란 무덤처럼 산발이 됩니다. 들꽃이 피고, 고사리가 자란 무덤은 손길이 닿았기에 그런 모습이 된 것이지요.

잡초 무성한 무덤을 보니 신산한게 마음이 가라 앉습니다. 

각자의 사연을 스쳐 보며 걷자니, 귤나무가 이쁘게 놓인 묘가 보입니다. 무덤가 머리 맡에 놓인 이쁜 감귤나무. 정갈하고   . 이른 나이에 죽은 딸이 그리웠을까. 다가서니, 5남 3녀의 어머니네요. 잘 다듬은 나무를 보니 생전이 어떠했을까, 화목한 가족 모습이 그려집니다.

무 썩은 퀴퀴한 냄새가 따라 옵니다. 여기저기 썩히는 모습. 무우는 다듬어져 있습니다. 트럭에 한 번 실었다, 실갱이 끝에 운반비도 안 나오니 엎어 버렸을까.

여러 설화가 담긴 혼인지로 들어 섭니다.

연꽃이 한창일 때 내가 잘 왔구나. 일년 내내 늪지였을 텐데, 이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이폰 바탕화면 같이 단정한 꽃. 꽃봉오리 하나가 뒤에서 살금 고개를 내밀고 있네요.

제주의 세 왕자가 이국의 세 공주를 만나 합동 혼인을 하고, 입구는 하나이나 안쪽은 셋으로 쪼개진 이 굴에 들어가 첫날밤을 보냈다는, 구체적인 전설이 내려 옵니다. 내려가 보면 좁고 습기찬, 조그만 굴. 아따. 제주도 사람 상상력하고는. 혼인지에서 나가는 길을 못찾아 두 바퀴 뱅뱅 돌고 제대로 길을 찾습니다.

여기서 부터 낯선 모습을 보게 되지요. 훼손된 화살표를 봅니다. 길을 수정해 놓은 것일까. 올레 코스가 소소하게 바꼈다는데? 그렇지만 맞는 길입니다. 틀릴 리가 있나. 

훼손된 길을 걷다보면 마을 사람들도 삭막해 보입니다. 올레길도 지역 주민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겠지요. 이 부근 주민은 올레와 사이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아침에 스쳐간 공공근로중이던 할머니. 총각 멋있어, 멋있어 인사하셔서 머쓱하고 미안한 마음에 지나는 할머니들에게 목례를 했건만 맞인사해주는 분이 없어 살짝 삐졌던 소소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소매점이나, 식당, 민박이라도 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 지역은 그렇지 않아요. 

올레와 구경꾼이 불편한 이방인일 뿐인 주민들도 많을 겁니다.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다리가 무겁습니다.

금새 바다가 보입니다. 산길 한 번. 바닷길 한 번. 하나 하나가 산과 바다를 교차해 놨지요.

여기에 물고기 기름을 넣어 등대로 썼다는데. 너무 매끈하게 복원해서 정감이 들진 않아요.

소박한 해변 식당에서 성게국과 막걸리를 시킵니다. 걷다 낮술 먹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지역민이 앉아 있길래 들어간 식당이었는데, 식사가 늦습니다. 음식 맛은 글쎄. 지역민들도 툴툴. 이 동네 일하러 온 객지 사람이네요. 

성게를 미역국에 넣은 이 메뉴도 조화롭지 않습니다. 비싼 성게 향이 국물에 우러나는 것도 아니고, 미역향에 다 죽어 버립니다. 성게의 크리미한 맛도 질감도 후루룩 먹으니 느껴지지 않아 아쉽습니다. 성게국 너는 아웃이다.

대신 제주도 특유의 자리젖. 곰삭은 자리젖을 몇 번 씹을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만, 세 번을 씹으면 느낄 수 있는, 단백질이 발효되어 나는 특유의 향과 질감. 맛있습니다. 

해안을 따라 걸어 갑니다. 신고 있는 운동화는 역시 올레길에 맞질 않네요. 다른 건 괜찮은데, 돌 위를 걸으면 발목이 꺽입니다. 한 두 번 접지를 뻔 하지만, 운이 좋습니다. 경등산화 신고 오세요. 잔디도 밟고, 침엽수 부엽토도 밟으면 걷기에 집중하는 소중한 순간을 즐깁니다.

일러스트레이션에서나 보던 풀입니다. 이렇게 말려 들어간 모양이 상상이 아니었구나.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간질간질한 느낌.

산길, 돌길, 그리고 이런 농로. 시골집에 온 기분. 시골집은 없지만, 그래도 기억 속의 시골집에 온 기분입니다.

덥다, 힘들다. 천혜향을 하나 들고 가격을 물어 봅니다. 3천원. 맥주값일세.  그러나 눈이 번뜩 뜨이게 맛있습니다. 과육 맛에 취해서 헤롱헤롱.

달큰한 천혜향을 먹고 있으니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깁니다. 스쳤던 갤러리나 한 번 가볼까. 김영갑 갤러리에 들어 갑니다. 잔잔한 테라코타로 이쁘게 꾸민 정원. 순둥이 눈빛을 하나하나 맞추어 가며 둘러보다 사진 갤러리 표를 끊었습니다.


예사롭지 않습니다. 갤러리 사진은 사진집이나 이 곳에서 직접 보시길.

김영갑은 제주도 사진을 찍으며 서울에서 오르내리다 제주도에 뿌리내렸습니다. 밥 먹을 돈 아껴 필름 사서 제주도 곳곳을 찍다, 하나 둘 모인 작품을 위해 폐교를 갤러리로 꾸미게 됩니다. 그때 루게릭병이 찾아 옵니다. 생의 마지막 몇 년간 이 곳 근처, 용눈이 오름에 빠져 들어 열정을 불태웁니다.

2005년 죽은 후 이 갤러리 뒤 아끼던 감나무에 뼈를 뿌렸다고 합니다.


파노라마로 찍은 담담한 용눈이 오름의 다양한 모습들이 차분하게 걸려 있습니다. 뜨내기 여행자는 못 볼 다양한 면면이지요. 갤러리 한쪽 편에 김희갑, 양인자 부부가 만든 노래 악보가 붙었습니다.


이것저것 하려 갈팡질팡하다

인생이 그냥저냥 흘러갑니다.

인생사 아뿔사 알기야 알죠만

안다고 당신처럼 살아집니까.

삽시간에 사라질 황홀을 찾아

비에 젖으며 칼바람 맞으며 신명 대로 산 당신

사람들 틈 속에서 튕겨져 나와

달빛과 놀며 꽃 바느질하며 재미나게 산 당신

오늘은 바람되어 내 등짝을 번쩍 죽비처럼 후려치고 가는군요.

당신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시네요.


싱긋 웃음이 나오지만, 걸으며 계속 머리 속을 감도는 이야기입니다. 


“당신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시네요.”


아무 것도 모르고 멍한 마음으로 들렀던 곳에서 화두 하나를 얻어 갑니다. 한쪽 편에선 루게릭병에 걸린 김영갑씨 영상이 흘러 나오네요.

올 봄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건축가 정기용씨의 임종을 보며 느꼈던 경건함이 다시 감돌았습니다. 

말기암에 시달리는 몇 년, 사람이 죽을 때 죽음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 고맙다.  죽음을 마주하고, 인정하며 위엄있게 준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갤러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김영갑씨 개인 작업실입니다. 사람은 가도 그 사람이 있던 공간과 읽던 책은 남는군요.

갤러리 뒤에는 고인이 사랑한 감나무도 있고, 무인 카페가 있습니다. 일리 캡슐이 2천원이더군요. 천혜향 삼천원을 내고 나니 천원 짜리가 없어, 냉수를 마시며 사진을 보고난 여운을 정리합니다.

여행지에서 올레길을 이야기하다 보면, 이곳을 사랑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갤러리 맞은 편에도 조그만한 까페가 있었네요. 감흥을 유지한 채 발걸음을 옮깁니다.

담담한 마음을 담고 걸으면 나오는 바다. 

그리고 까마득 펼쳐진 들판.

서서히 지는 햇빛에 역광이 된 조랑말과 그 너머 야자수. 헐리웃 영화에서 천국에 들어서면 이런 풍경을 보여 줬었지.

여기서 부터는 서쪽으로 걸으니, 해질녘이 되면 모두 역광으로 보입니다.

아침의 파란 세상. 시간이 조금 지나 곧 녹색으로 물들고. 해 뜨면 비취색 바다가 보입니다. 지금 시간이 되면 오렌지 빛이 주변에 자욱하지요.

광활한 바다 목장 한 켠을 여행자들에게 내준 목장주에게 감사하며 한 발작 한 발짝 아끼며 걸어 갑니다.

이처럼 거대한 공간, 아득히 멀리 시야에 들어 오지만 사람은 저 혼자 뿐입니다. 

혼자라서 느끼는 진한 도보 여행의 즐거움.

오월, 이 무렵, 이 날씨에 또 한 번 오더라도 같은 느낌이 들까. 그러긴 힘들겠지요.

이틀 전 까진 아귀다툼의 한복판에 있었는데, 여행 둘째 날 호사스러운 즐거움을 느끼다니, 정말 일체유심조입니다.








온기가 증발해 삭막하게 느껴진 2코스를 걸으며 상념에 젖은 채, 마지막 순간까지 용눈이 오름과 함께하며 죽음을 찬찬히 받아 들인 사진가에 공감하다가, 석양이 가득한 광활한 들판을 홀로 걸었습니다.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조금 더 걸으면 표선 해변이 나옵니다. 파도가 해초 지꺼기로 그려 놓은 진경 산수를 봅니다. 제주의 오름 특징을 파도가 잘 캐치했네.

간간히 오름에서 풀 뜯어 먹는 조랑말과 소 가족들의 모습도 찾아가며 길을 걷습니다. 

이제 관광객들 웃음 소리가 들리는 관광지. 간세를 찾아가 스탬프를 찍습니다.

전복 뚝배기와 맥주로 저녁을 합니다. 오늘 걸은 길의 감동에 도취된 채 마시는 맥주. 그러나 전복 뚝배기는 이해할 수 없는 음식이네요. 

뜨겁고 매운 국물에 전복이 들어, 그 맛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전복을 질겅질겅 껌 씹는 기분으로 비싼 재료를 씹게 됩니다. 해물을 다듬어 육수에 끓여 내기만 하면 되니 편하게 서빙할 수 있긴 하겠다 툴툴거리며 관광지 식당에서 나섭니다. 

들어선 게스트하우스는 꽤 초창기에 세워진 곳이라, 포지티브 피드백도 네가티브 피드백도 많은 곳입니다. 손님이 저 밖에 없고, 맥주 한 병 공짜로 가져다 주면 그 곳은 좋은 곳이 될 수 밖에 없지요. 뜨거운 물로 오랜 시간 꼼꼼히 몸을 씻어 내고 잠자리에 오니, 자전거 여행자가 한 명 와 있습니다. 한옥 목수 아저씨. 도미토리에서는 서먹서먹한 시간은 짧습니다. 평당 건축비부터, 여자 친구들과 마음의 평정을 찾아나선 여행  이야기로 뻗어 나가다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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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공항-1코스-2코스 초입.  (0) 2012.06.12

1일차. 공항-1코스-2코스 초입.

3년 전, 제주 올레길을 개척한 서명숙씨 강연을 들었었지요. 올레? 아침에 제주도에서 올라온 강사는 반짝 반짝한 눈으로 즐겁게 이야기했습니다. 왜 자신의 길을 만들었는지, 두 시간 지치지 않고 신나게 이야기하더군요. 지지고 볶는 주간지 기자 생활과 아줌마에게 불친절했던 수영 강사 이야기까지 왜 걸을 수 밖에 없었는지... 가끔 이 분 서울 올라와 강연하시니 직접 들어 보세요.

그래, 나도 지쳐서 너덜너덜해지면 제주도 한 번 걸어보자. 인생에서 비워 둘 한 달, 있겠지. 바쁜 3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넉넉한 시간 제 인생에 없더군요. 그 사이 제주 올레 코스는 점점 길어 집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길어지고 있습니다. 가려면 빨리 가세요.

복잡한 머리   비우자  감고 떠나자 마음 먹으니어느새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이것저것 따지면 못 떠나지요. 저가 항공은 처음입니다. 제주 항공. 기대와 달리 별 차이가 없습니다. 좌석 쿠션도 팡팡하고, 심지어 승무원은 더 미인입니다.

얼마 만의 제주공항인지. 남국의 날씨는 서울과 별 차이가 없네요. 때때로 뉴스에서 보니 서울 날씨가 더 높았습니다. 1코스 출발점 시흥초등학교에 가려면 시외 버스를 타야 합니다. 또 그 시외버스를 타려면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죠.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저처럼 와도, 공항 1층에 있는 올레 센터에 물어보면 안내해 줍니다. 여행 중에 만난 길동무도, 거진 충동적으로 준비 없이 온 사람들입니다. 올레 강연까지 듣고 온 사람은 없어요.  

터미널에 도착. 제주도에서 만난 버스 기사들은 친절했습니다. 버스 기사님이라고 해야 겠군요. 아리가또 고마이마아스 입에 배인, 일본 버스 기사의 친절함과는 다른 형태의 친절, 액면 그대로의 친절이라할 그런 친절입니다. 손님 찾으시는 것 있으세요류의 친절이 아니에요. 지폐를 못 찾아 허둥대니 그냥 타고 가시라는 호탕한 기사님. 할머니가 노선에도 없는 병원까지 태워 달라 우기기에, 공항 가는 버스니 다른 거 타라 몇 번을 말하다가 “삼촌, 이거 타면 엉뚱한 데로 가요. 금방 온다니까요.” 이 말을 웃으며 하는, 그래서 승객들도 시트콤처럼 와하하 웃는 그런 모습을 봅니다. 컬쳐문화. 쇼크충격입니다. 참고로 제주에서는 연배가 높은 분이면 그냥 다 삼촌이네요. 그날 저녁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분은 시외버스 기사가 오늘은 늦어 거기로 가면 안되니, 다른 코스를 둘러 보시라 관광 안내까지 해주었다 하죠.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거리. 먼 길입니다. 올레길에서 가장 힘든 구간은 어디일까요. 일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올레길에 올라서는 그 길이 가장 힘듭니다. 걸어 본 경험입니다.

그렇다고 공항 주변의 가까운 17코스, 18코스를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처음이면 1코스로 가세요. 1코스부터 걸으며 느꼈습니다. 기승전결의 드라마틱한 구성을 느꼈습니다. 서명숙씨는 부정할 지 모르지만. 

시흥 초등학교의 올레 진입로입니다. 원래는 시흥 초등학교부터 시작하지만, 출발점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버스 기사님이 그랬어요. 출발 스탬프가 들어 있는 나무 간세가 오른쪽 구석에 보입니다. 여기서 좀 올라가면 스탬프 찍을 패스포트를 파는 올레 안내소가 나옵니다. 패스포트에 포인트마다 스탬프를 찍어가며 여행을 하는 거죠. 여기 와서 그런 틀에 매인 그런 거 안할거야, 출근 도장도 아니고. 제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딱 이틀만 찍고 다니면 중독됩니다. 며칠 지나면 올레 사무국에 전화 걸어 도장 없다고 항의를 해요. 제가 그랬어요. 

찍고 다닐려면 올레 패스포트가 필요합니다. 공항에서는 이스타 항공 부스에서 팝니다. 귤색 제주 방면, 파란 서귀포 방면 두 권이 있는데, 모두 사는 편이 낫습니다. 한 권에 12000원, 올레 운영비에 들어간다고 하니 입장권을 끊는다 생각합시다. 제가 간 오월에는 세 코스 스탬프를 찍었으면 무슨 요트를 공짜로 태워 줬다고 하네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작합니다. 제주 동부의 밭. 비어 있습니다. 동부와 서부는 농사 규모도, 작물도 차이가 크고, 분위기 또한 다릅니다. 인사 받는 빈도나 말거는 빈도가 달라요.

한적한 농로를 걸어 갑니다. 슬슬 배고픈 시간. 공항에 내려, 올레 코스로 진입하는 시간이 아슬아슬하게 식사 시간을 비켜가고 밥먹을 곳이 없어요. 간식거리를 챙기는 게 좋습니다.

갈색 점점이 산에 박힌 것이 뭔가 싶어, 몇 걸음 다가가 보니 소 엉덩이가 보입니다. 산양처럼 비탈에 붙어 있습니다. 저 덩치로 어떻게 올라갔니 싶지만, 산 잘타요. 제주는 국내에서 유일한 소 방목지라네요.

둔덕을 올라가면 올레 안내소가 나옵니다. 안내소 천정에 드리워진 말인형간세 인형입니다.   옷을 이용해 수제로 만들기 때문에 저 마다 다르게 생겼지요건들건들 게으른 간세. 1코스를 시작할 때면 비싸서 선뜻 사기 어렵습니다. 떠나는 공항올레길을 마칠 때에야 비로소 하나 갖고 싶지만 그땐 파는 곳이 없습니다

봉사자에게 물어봅니다. 식사할 곳은 어디 즈음 있나요? 한시간 걸으면 되요. 한숨 쉬고,  모금 마시고 나섭니다.

안내소를 나오면 첫 오름이 나옵니다. 올레의 첫 오름입니다. 말미오름.

벌이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배고프다. 진달래, 철쭉, 산철쭉이 헷갈리십니까. 꽃부터 급하게 피는 것이 진달래. 이파리와 꽃이 함께 피는데, 그 잎이 둥글면 철쭉이고, 저처럼 뾰족하면 산철쭉입니다. 라고는 하는데, 영산홍과 산철쭉은 어떻게 구분하는가로 넘어가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산에서 자라면 산철쭉이고, 정원에 자라면 영산홍이라나. 구분 못한답디다.철쭉 종류가 수 천 종은 되고, 엇비슷한 변종이 워낙 많아서 어디 가서 아는 척 하면 절대 안될 일입니다.

흐드러지게 핀 산철쭉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반겨주는 것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오름을 오르는 길은 폐타이어 매트를 깔아 발이 편합니다. 초등 또래의 아들과 지나가는 엄마를 지나 갑니다. 슬리퍼를 신고 있네요. 게스트하우스에서 들어보니, 인공적인 길에 거부감을 갖는 분도 꽤 있더군요. 바쁜 사람 발길에 소실되고 패이는 토사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눈감아줘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출봉의 실루엣이 슬쩍 보입니다.

쵸코케익 시트 같이 먹음직스러운 일출봉입니다.

이번에는 마닐라삼 매트가 깔린 길입니다. 1코스는 운동화만 신어도 충분한 길입니다. 도넛 같은 오름의 능선을 살살 돌아 걷습니다. 산뜻한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위성지도에서 보면 정말 도넛처럼 생겼습니다. 태극 모양에 가까울까요. 좀 많이 찌그러진. 

http://local.daum.net/map/index.jsp?map_type=TYPE_SKYVIEW&map_hybrid=true&q=%EC%98%AC%EB%A0%88%EA%B8%B8%201%EC%BD%94%EC%8A%A4&urlX=473405&urlY=-3727&urlLevel=4

성산 일대를 내려다 봅니다. 트랙터 자국이 요란한 밭이 눈에 띄네요. 아마도 무우밭이겠지요. 오름을 한바퀴 돌았기에 저 멀리 일출봉이 다시 보입니다. 이 오름 주변도 소 방목지라고 하네요. 



아슬아슬 뿌리를 내놓고 매달린 들풀들.

앞서간 사람의 발길이 남은 흙 길입니다. 흙 길, 콘크리트 길, 아스팔트 길, 타이어 매트 다양한 길을 밟는다 생각했지만, 애초에 맛배기만 본 겁니다. 지겹도록 다양한 길들을 걷게 됩니다.

도롱이 벌레, 오랜만에 봅니다. 더운 날 데롱데롱 뭘 하시나. 하나만 있을 때는 귀엽습니다. 한 열마리가 길 못가게 버티고 있으면 에이리언같이 느껴지지만.

두번째 마주치는 알오름을 올라 갑니다. 알오름은 알처럼 생겼고, 성산 일출봉은 성처럼 생겼고, 식산봉은 밥 공기처럼 생겼고… 제주 사람들 이름 짓는 센스 솔직하잖아.

스폰지 케익처럼 포근한 오름입니다. 윈도XP 부팅음이 들려 옵니다.

일출봉. 너 자주 본다.  1,2코스는 한 번 돌 때 나올 때 마다 일출봉과 마주치게 됩니다. 달처럼 뒤를 졸졸 따라 오는 일출봉.

처음 본 올레꾼. 대개 여성분들 두 명이 나란히 걷습니다. 딱 그렇게 걷기에 좋은 길입니다. 혼자 걸으려면 저처럼 잡생각이 많아야 합니다.

농로를 탈탈탈탈 지나는 할아버지. 속도가 우연찮게 맞아 떨어져, 앞서거니 뒷서거니 10분을 따라 갑니다. 잠시 멈추고 할머니를 픽업하여, 옆에 앉히고 다시 탈탈탈.

태닝 중인 소들. 어린 송아지는 볼 기회가 없었는데, 너 참 귀엽다. 갓난쟁이들 보이시나요. 제주도 축사는 특유의 냄새가 안납니다. 맛의 달인에 50미터 거리에서 냄새나는 축사의 소고기는 먹지말라는 에피소드가 있었지요. 

모던한 패턴이라멀리서 보고 무슨 갤러리인가 생각했지만, 다가서니 폐가. 스페인 하몽 공장에  있는 기분. 저거 방수재일까요.

큼큼한 냄새. 무우 밭을 엎어 놨습니다. 제주 동부를 지나며 수도 없이 볼 모습입니다. 작년 육지 무우 농사가 망해, 제주 무우가 많이 올라 갔다고 하죠. 올해 무우 심은 농가가 많았는데… 보시다시피 올해 무우는 육지행 배 탈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렇게 한 알 한 알 뽑아 놓은 밭. 트랙터로 갈아 놓은 밭. 모아서 쌓아 놓은 밭.

읍내로 들어서자, 조그만 점포가 보입니다. 오는 길에 처음 만나는 점빵. 물 하나에 얼마일까? 천원? 천오백원? 할머니는 오백원을 받습니다. 우리 동네보다 싸다. 여행 내내 그랬죠. 좀 비싸다 싶은 곳에선 쉰다리 한 잔 마시고 가라, 컵에 따르며 미안한 눈길을 보냈습니다.

점심을 먹을 곳이 애매하기 때문에 1시 경 까지 그냥 걷습니다. 배 고프다. 아침에 출발한 올레꾼들 모두 배 고플 시간이겠지. 조금만 걸으면 맛집으로 유명한 시흥 해녀의 집, 오조 해녀의 집이 나옵니다.

빈 밭과 돌벽과 버려진 벽돌벽. 집을 허물어 밭을 만들었나. 

바다로 흐르는 하천을 옆에 끼고 걷습니다. 제주 바다가 기다립니다.

멀리 보이던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오름 두어개 넘어가면 해변이 보이고, 해변길을 걷다가 다시 오름을 올라가고. 올레길 하나하나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지요. 

유모차 끌며 아빠 찾아가는 어느 엄마. 지켜보자니, 유모차는 모래속에 빠져들고아주머니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아저씨는 조개 잡으며 노는 데 여념이 없는데, 오늘밤 무사할까요

제주에서는 반건조 오징어 피데기를 준치라고 부릅니다. 제주에서는 오징어가 안잡혀 외지에서 실어와 말린다고 합니다. 그래도 맛있답니다. 전복도 완도 양식산이 대부분이라 하죠. 자연산은 따로 주문해야 한답니다. 캔맥주 같이 팔면, 걸터 앉아 먹고 가겠는데. 

중간 스탬프 찍는 곳. 출발점-중간-종점. 한 페이지에 세 개의 도장을 찍습니다.

시흥 해녀의 집에 왔습니다. 이번 여행 처음 맛보는 제주 음식. 올레길에서 만나 같이 걷다 커플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죠. 아까 서먹하던 남녀도 어느새 친해져 옆 테이블에 앉아 있네요. 여자 분 발바닥이 아침마다 아프다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는데, 이런저런 증세가 아무래도 족저근막염. 걸으면 점점 심해질 거에요. 스쿠터 하나 빌려 편하게 여행하시고 정형외과가서 물리치료하세요라고 말해 주고 싶지만, 오지랖. 말하면 저 아저씨 나 미워하겠지. 아프면 알아서 쉬겠지, 아저씨가 업어 주거나. 내 길이나 잘 걷자.

식사를 하고 걷다보니 조랑말이 보입니다. 건들건들 한가로운 녀석들. 올레 마스코트에 붙인 간세라는 이름이 잘 어울립니다.

물질하는 해녀 분.  

깃발 달린 빨간 장대. 피-스.

여기 저기 다 삶의 터전. 가다보면 일하시는 분이 종종 보이지만, 미안해서 사진을 못 찍겠어요.

갑문교 다리를 지나 성산포로 갑니다.

멀리 보이던 일출봉이 코앞에 왔습니다. 관광객의 모습이 많아집니다. 여기 저기 들리는 중국말. 중국 관광객이 명동보다 많습니다.

펜스를 넘지 말고 매표소에서 표를 끊으시오, 안내 표지판이 있다. 뒤 따라 오던 낚시꾼이 말을 겁니다. 

"일출봉 가요? 여기서 넘어 가면 돼."

그러고는 먼저 시범을 보이며 폴짝 넘어 가는데, 저는 살살 웃으며 가던 길을 갔습니다. 하루종일 봤는데, 굳이 올라갈 것 까지야.

일출봉 근처에 가서, 수 많은 중국 관광객을 보니 왠지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중국에서도 여길 올라가려 왔는데 엄청 보람있을지도 몰라. 군대 가기 전에도 분명히 올라 갔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아요. 매표소에서 표를 끊자니, 아까 낚시꾼 아저씨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습니다. 

남산 정도의 높이를 오르면 일출봉 정상이 보입니다. 한참 데크 공사중이라, 날카로운 그라이더 소리, 관광객의 말 소리. 중국의 관광지에 온 기분입니다. 내려 오니 새로 온 관광버스에서 중국분들이 또 우르르 내립니다.

중국분들 사진 찍는 모습을 보니 재미있습니다. 문화가 달라요. 사진 찍어달라 일행에게 부탁하고 앉았다 섰다 독사진 포즈를 적극적으로 취합니다. 엄마가 딸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너댓장 사진을 요구하더니, 딸 사진은 안찍고 그냥 가요. 멋져. 쿨해.

일출봉에서 내려오는 길.

왁자지껄 관광객을 구경하는 스님. 뭐 볼 게 있다고. 쯧쯧. 하는 환청이 들립니다. 관광객 구경이 나름 재미있습디다. 스님.

신혼부부 티를 내는 신혼부부. 여름이 되면 유채꽃 가득한 산책로가 되겠지요.

뒤돌아서 본 일출봉은 다른 모습입니다. 수 천 년의 랜드마크.

왠 배춧잎들이 흩뿌려져 있을까요. 다 만원 짜리라면 좋겠다만. 무우 썩은 내를 이은 배추 썩은 내.

습지 위 데크의 펜스 재미있네요. 멋모르고 앉으면 볼 조인트가 휙 돌아 습지에 빠지게 되는 구조. 누가 멋모르고 앉았기에 돌아갔겠지. 

다음 순간,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닫습니다. 나에겐 스마트폰이 있잖아. 지름길을 선택해 가다보니 조랑말이 날 가만히 쳐다 봅니다. 별 일 있겠어, 뚱하게 못본 척 잽싼 발걸음으로. 철조망 펜스를 지나 농로로 들어서니 심장이 콩닥거리네요. 갑작스런 말들과의 조우는 여행 동안 몇 번 반복됩니다. 조랑말이 낯선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2코스 초입을 잠깐 걷다 하루를 마감하기로 합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중 하나는 제주 게스트하우스 관광. 이 날 묵은 곳은, 펜션이 장사 안되어 게스트하우스한다 컨셉입니다. 펜션 간판 뗀 흔적이 역력하지요. 

도미토리엔 두 명이 있었습니다. 회사 때려치울 폭풍전야, 잠시 김 빼러온 신혼의 동생. 이혼 후 반 년 열심히 살다, 어느 날 멘붕이 찾아온 아저씨. 근처 식당에서 한라봉 막걸리를 마셔 봅니다. 이 지역은 8시면 문을 닫네요. 막걸리도 바쁘게 마십니다. 바쁜 하루였습니다.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걸은 거리. 약 1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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